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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와 데리다가 지금 시대에 던지는 질문

by 마사지볼1 2025. 4. 10.

— 오래된 철학자가 오늘 우리를 관찰한다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SNS를 들여다본다.
좋아요 개수를 확인하고, 댓글을 읽고, 누가 나를 팔로우했는지 살핀다.
겉으로는 자율적으로 보이지만, 어쩐지 늘 누군가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정말 나는 자유롭게 살고 있는 걸까?”

이 질문에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고개를 젓는다.
그는 말한다.

“권력은 경찰처럼 명령하지 않는다.
규칙처럼 ‘이상적인 삶’으로 위장한 채 당신을 조용히 감시한다.”

푸코는 학교, 병원, 감옥, 심지어 가정과 교과서 속에도 **‘보이지 않는 권력’**이 숨어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무섭게 지켜봐서 행동을 바꾸는 게 아니라,
“이래야 한다”는 기준이 내면에 뿌리내릴 때 스스로를 통제하기 시작한다.
이걸 그는 ‘규율 권력’이라 불렀다.

그럼 오늘날 SNS는?
정해진 복장 규정도 없고, 누가 감시하는 것도 아닌데
‘예쁜 셀카’, ‘완벽한 라이프스타일’, ‘핫한 취향’이 암묵적인 기준이 되어
사람들 스스로를 매만지게 만든다.
이건 푸코의 이론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디지털 시대의 현실이다.


한편,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는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너는 네가 누구인지 정말 알고 있는가?”
“너의 말은 네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을 완전히 담고 있는가?”

데리다는 우리가 믿는 언어, 논리, 정체성 같은 것들조차 ‘해체’될 수 있다고 본 철학자다.
우리는 '남자 vs 여자', '이성애 vs 동성애', '정상 vs 비정상'처럼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데리다는 묻는다.

“그 경계선, 누가 정한 건가요?”

그는 언어는 항상 다른 언어에 기대어 의미를 만들기 때문에,
어떤 말도 절대적인 진실을 담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 말은 곧, 우리가 ‘나’라고 믿는 정체성도 사실은
끊임없이 주변 환경과 언어에 의해 만들어지는 가변적인 것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젠더퀴어, 유동적 성정체성,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바로 데리다의 해체주의에서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내가 여성스럽지 않은 여자인 건 이상한 게 아니라,
‘여성스러움’이라는 개념 자체가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깨달음이 시작점이 되는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의 질문

푸코는 묻는다.
“당신이 따라가는 ‘좋은 삶’은, 정말 당신이 원하는 삶인가요?”

데리다는 묻는다.
“당신의 정체성은 스스로 만든 것인가요,
아니면 언어와 사회가 정해준 틀에 갇힌 건가요?”


어쩌면 이 두 철학자는 지금 우리를 스마트폰 화면 너머에서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좋아요에 흔들릴 때,
우리가 말 속에 스스로를 가둘 때,
그들은 말없이 이렇게 속삭인다.

“진짜 ‘너’는 어디에 있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