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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by 마사지볼1 2025. 5. 13.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는 강간 누명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을 중심으로 인간관계의 단절과 치유, 침묵의 잔인함을 탐구한다. 시로의 피아노와 색채 있는 인물들의 상징까지 해석한다.

※ 이 글에는 작품의 결말 및 핵심 반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아직 책을 읽지 않았다면 주의하세요.


📘 요약: 단절의 진짜 이유

주인공 다자키 쓰쿠루는 고등학교 시절, 다섯 명의 친구들과 완벽한 유대감을 나누며 살았다.
하지만 그중 유일하게 이름에 ‘색채’가 없는 인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 이유도 듣지 못한 채 친구들에게 완전히 차단당한다.
단 한 마디의 설명도 없었다. 쓰쿠루는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도 모른 채 오랜 세월을
‘버려진 자’로 살아간다.


🎯 핵심: 시로의 강간, 그리고 쓰쿠루의 누명

연인 ‘사라’의 권유로 과거 친구들을 하나씩 찾아간 쓰쿠루는
마침내 단절의 이유를 듣게 된다.

친구들은 “시로가 쓰쿠루에게 강간당했다”고 말했다고 했다.
그 말 하나로, 아무런 확인도 없이 그는 단절당한 것이다.

하지만 쓰쿠루는 그런 적이 없다.
시로와는 손 한 번 제대로 잡아본 적도 없다.
그 고백은 독자인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 시로는 왜 그런 거짓말을 했을까?

시로는 소설 전반에 걸쳐 정신적으로 불안정하고 예민한 인물로 그려진다.
결국 그녀는 정신질환을 앓았고,
캐나다에서 성폭행 후 살해된 시체로 발견된다.

즉, 시로는 진짜 강간 피해자였다.
하지만 그 고통을 말할 수 없었고, 해소할 방법도 없었다.
결국 아무런 잘못도 없는 쓰쿠루에게 그 고통을 왜곡된 방식으로 ‘떠넘긴’ 것이다.


❓ 왜 하필 쓰쿠루였을까?

하루키는 명확히 설명하지 않지만, 충분히 짐작은 가능하다.

  • 쓰쿠루는 정서적으로 가장 안전한 사람이었다.
  • 진짜 가해자는 말할 수 없을 만큼 두려운 존재였고,
    감정을 투사할 대상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트라우마는 때로 현실을 왜곡한다.
누군가를 탓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이, 가장 ‘안전한 존재’였던 쓰쿠루였던 것이다.

그녀는 그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애매한 감정 —
사랑인지 외로움인지 모를 어떤 감정도
그 선택에 영향을 줬을지 모른다.


🧠 하루키가 말하고 싶었던 것

이 사건은 단순한 설정이 아니다.
하루키는 독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 사람은 왜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침묵하는가?
  • 누구의 기억이 진실이고, 누구의 말이 믿을 수 있는가?
  • 확인되지 않은 말 하나가 한 사람의 인생을 어떻게 무너뜨릴 수 있는가?

시로는 ‘악의적인 거짓말쟁이’가 아니다.
그녀는 상처받은 사람이 왜곡된 방식으로 살아남으려 했던 존재다.
하지만 그 침묵과 왜곡은 결국 아무도 구하지 못했고, 파국으로 끝났다.


🎹 시로가 피아노를 선택한 이유

말 대신 음악

시로는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대신 피아노라는 매체를 통해 감정을 전달하려 했다.

피아노는 그녀에게 유일하게 안전하고, 조율 가능한 감정의 언어였다.

말은 거짓일 수 있지만,
음악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시로가 선택한 건 대화가 아니라 공명이었다.

질서 속의 위안

피아노는 악보가 있고, 누르면 정확한 음이 나온다.
혼란스러운 내면을 가진 그녀에게는 이 구조와 질서 자체가 피난처였을지도 모른다.


🎨 색채 있는 사람들의 침묵은 무엇을 말하는가?

쓰쿠루 외의 친구들 — 아오, 아카, 구로, 시로 —
모두 이름에 색이 들어간다. 그들은 색채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정작 위기의 순간,
가장 선명한 색을 가진 사람들이 침묵했고,
진실을 외면하며 책임을 회피했다.

이건 하루키가 만든 슬픈 역설이다.

다자키 쓰쿠루는 ‘무색’이었지만,
그렇기 때문에 융화되고, 고통을 견디고, 결국 성장할 수 있었던 인물이었다.
색이 없기에 오히려 모든 색을 담을 수 있는 존재.


✅ 쓰쿠루는 그 모든 걸 끌어안고

진실을 듣고도 쓰쿠루는 분노하지 않는다.
묵묵히 받아들이고, 과거를 꺼내 직면하는 길을 택한다.

그 과정, 그 순례야말로 하루키가 말하고 싶었던 본질이다.


✍️ 내가 느낀 점

읽는 내내 불편했다.
이유도 모른 채 버림받고,
그게 강간 누명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됐을 때, 진짜 ‘띠용’했다.

그런데 나중에 깨달았다.
그 설정조차 하루키식 질문이자 장치였다는 걸.

단절, 무고, 침묵, 누명. 그리고 자기 회복.
읽고 나면 쉽게 잊히지 않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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